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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는 '콜 레뇨(Col legno)' 기법의 진화 과정

by content0078 2026. 4. 27.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는 '콜 레뇨(Col legno)' 기법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는 '콜 레뇨(Col legno)' 기법

 

클래식 전용 공연장의 푹신한 객석에 앉아 교향곡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이따금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묘한 충격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우아한 현악기 단원들이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손에 쥔 활을 홱 뒤집어 나무 부분으로 현을 탁탁 내리치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운 말총 대신, 딱딱한 나뭇대로 쇠줄을 때리는 이 투박한 행위. 처음 이 장면을 직관했을 때, 저는 마치 악기에 대한 일종의 '학대'를 보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던 기억이 납니다. 현악기는 응당 활을 부드럽게 그어 유려하게 '노래'해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음악 용어로 '콜 레뇨( Col legno battuto)'라 불리는 이 기법은, 이탈리아어 사전적 의미 그대로 '나무로 현을 치는 연주법'을 뜻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건조한 음악 사전의 정의를 넘어, 콜 레뇨야말로 클래식 음악이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날것의 소음(Noise)'을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가장 도발적인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골의 춤, 그리고 작곡가의 잔인한 상상력

제가 콜 레뇨가 가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매력에 처음 압도되었던 것은, 대학 시절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5악장을 실황으로 들었을 때입니다. '마녀들의 밤연회'라는 부제에 걸맞게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무렵, 수십 명의 현악기 군이 일제히 콜 레뇨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순간 공연장에는 마치 수백 개의 마른 해골 뼈다귀가 부딪히며 춤을 추는 듯한, 스산하고도 건조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음반으로만 들었을 때는 그저 타악기 주자가 나무 막대기를 두드리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괴한 마찰음이 수십 명의 주자들이 활을 뒤집어 내리치는 물리적이고 집단적인 행위를 통해 눈앞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될 때의 소름 돋는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작곡가들은 왜 굳이 노래하는 현악기에게 타악기의 역할을 강요했을까요?

 

저는 이것이 단순히 독특한 소리를 내기 위함을 넘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우아함'이라는 금기를 깨기 위한 예술적 일탈이었다고 봅니다.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 파트에서 들리는 콜 레뇨 역시, 전쟁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을 표현하기 위해 악기의 가장 비정상적인 사용법을 차용한 결과물일 것입니다. 작곡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파괴적인 상상력을 현실의 공기 중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악기가 지닌 본질적인 사용법마저 기꺼이 비틀어버린 셈입니다.

무대 뒤의 현실: 1억 원짜리 활과 3만 원짜리 카본 활의 숨 막히는 교체

콜 레뇨 기법이 음악사에 남긴 발자취를 미학적 관점이 아닌, 무대 위 연주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매우 얄궂고 흥미로운 딜레마가 숨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평소 알고 지내는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와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알게 된, 무대 이면의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일반 대중은 악기 본체의 가격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프로 연주자들에게 있어 '활'은 악기 못지않은 분신이자 전재산입니다. 특히 페르남부쿠라는 희귀 나무로 만들어진 명장들의 올드 프렌치 활은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을 가볍게 넘어서며,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를 호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백 년 전의 천재 작곡가가 악보 귀퉁이에 무심하게 'Col legno'라고 적어 놓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주자는 그 비싼 명품 활의 등뼈로 팽팽한 현을 사정없이 내리쳐야 합니다. 활의 나무 코팅이 벗겨지거나 패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활대가 부러질 수도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오케스트라 현장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꽤나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촌극이 벌어집니다.

 

연주자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보면대 아래나 의자 옆에 콜 레뇨 연주용으로 쓸 값싼 카본 활이나 연습용 막전투 활을 몰래 숨겨둡니다. 그리고 곡이 콜 레뇨 파트에 접어들기 직전의 찰나의 쉼표 구간에서, 재빠르게 수천만 원짜리 명기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막 쓰는 활'로 바꿔 쥐어 현을 두들깁니다. 그 거친 파트가 무사히 끝나면? 다시 서둘러 원래의 메인 활로 교체하여 평온한 표정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콜 레뇨라는 기법이 품고 있는 가장 아이러니하고도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의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파괴적인 음향과, 자신의 생계 수단이자 분신인 악기를 보호하려는 연주자의 눈물겨운 현실적 타협이 무대 위 그 짧은 순간에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베를리오즈와 말러가 남긴 위대한 악보의 혁신을 찬양하겠지만, 저는 그 이면에서 자신의 소중한 활을 지키기 위해 값싼 서브 활을 몰래 준비하는 연주자들의 그 조심스럽고도 민첩한 손놀림이야말로 콜 레뇨의 역사를 완성하는 진짜 숨은 조각이라고 느낍니다.

결함이 빚어내는 새로운 미학, 소음이 음악이 되는 순간

결국 콜 레뇨 기법이 진화해 온 과정은, '아름답지 않은 소리'를 음악의 넓은 품으로 포용해 나간 치열한 역사입니다. 말총으로 부드럽고 정확하게 긋는 정석적인 연주가 잘 다듬어진 '정제된 언어'라면, 나무 막대로 거칠게 현을 내리치는 콜 레뇨는 가다듬어지지 않은 인간의 '본능적인 비명' 혹은 '거친 숨소리'에 가깝습니다.

 

현대 음악으로 시대가 넘어올수록 이 기법은 단순한 타악기적 효과나 충격 요법을 넘어, 소리의 질감, 그 자체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때로는 현을 내리치는 방식을 넘어, 나무 부분으로 현을 긁어내듯 긋는 '콜 레뇨 트라토(Col legno tratto)'라는 기묘한 마찰음까지 요구하며 우리 귀를 낯설게 만듭니다.

 

수백 년이 지난 클래식 음악이 박물관 유리관 속에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유기체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렇듯 악기가 가진 본래의 목적과 아름다움의 기준을 과감히 배반하면서까지, 끈질기게 새로운 소리를 갈망하고 실험해 온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번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을 때, 단원들이 일제히 활을 휙 뒤집어 현을 때릴 준비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온전히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완벽함이라는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내어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열어젖히는 짜릿한 일탈의 소리이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값싼 활을 쥐고 안도하는 연주자들의 인간적인 안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