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에 태어나 2022년 9월 8일까지 영국을 포함한 16개국과 다른 외국 영토 및 영토의 군주를 역임한 영국의 여왕입니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며,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라고 불립니다. 1952년 2월에 사망한 아버지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영국 여왕으로 지내다 2022년 9월 8일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의 발모럴 성에서 사망했습니다. 또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그레나다,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 쿡 제도, 세인트 빈센트,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벨리즈, 앤티가, 바부다, 세인트 키츠, 네비스를 포함한 영연방의 수장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성공회 최고 치리자, 노르망디 공작, 랭커스터 공작, 맨 섬의 영주, 피지 추장, 함대 사령관 등 다양한 직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2년까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군주이자 최장수 군주입니다. 2012년 6월 6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 64년간 재임한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한 두 번째 군주가 되었습니다. 2022년 2월 6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며 일본의 124번째 쇼와 천황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기 위해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도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 기준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을 넘어 영국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통치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왕위계승
왕위계승은 1951년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엘리자베스는 왕실 의식을 자주 거행했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해외 순방은 특히 엘리자베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가 케냐에 도착했을 때 조지 6세가 1952년 2월 6일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지 6세의 사망은 자동으로 그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자인 엘리자베스에게 왕위가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조지 6세가 세상을 떠나고 엘리자베스가 차기 군주로 지명되었을 때 그는 케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에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한 사람은 남편 필립 왕자였습니다. 그 후 왕실은 즉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 엘리자베스는 1952년 2월 6일 캐나다 추밀원에 의해 캐나다 여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의 영국 여왕 선포는 다음 날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년 후인 1953년 3월 24일, 그의 할머니 메리 대왕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을 맞이한 그는 손녀의 대관식이 지연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1953년 6월 2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 전 세계 2,500만 명이 TV로 시청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고, 공식적으로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전후 쇠퇴한 영국의 대외 위상을 회복하고 국내 자존심을 고취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화려하게 치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전쟁 중이던 대한민국도 서리 백두진 총리와 함께 대관식 특별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왕으로서의 삶
대관식이 끝난 후 왕과 필립 왕자는 왕실의 주요 거주지인 런던 중심부의 버킹엄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버킹엄 궁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거주지로 다른 주요 거주지인 윈저성으로 옮길 생각이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습니다. 1926년 메이지 제국의회 선언으로 1931년 웨스트민스터 제정법이 통과되면서 대영제국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1세를 떠올리며 '새로운 엘리자베스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52년 엘리자베스가 즉위한 이후 그녀는 왕의 명령에 따라 영국을 책임지고 있으며, 세계 경제와 군사력을 점점 더 많은 독립 국가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지난 50년 동안 각국이 급속한 경제 및 문화 발전을 목격하면서 대영제국의 점진적인 변화를 둘러싸고 영연방의 새로운 지도자들과 충돌해 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승전국이었지만 그 위상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실론, 버마, 말라야, 이집트, 로디지아는 1947년 조지 6세 치하에서 인도를 잃은 후 독립했습니다. 영연방의 자치령조차도 큰 틀을 유지하고 원주민 영국과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미 독립한 옛 식민지들도 영연방은 굳건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53년 11월부터 6개월간 영연방을 순방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는 영국 군주로서 영국과 유대감을 형성한 첫 번째 행사였습니다. 또한 영국 군주로서 50년 만에 인도를 방문하여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페르시아만 국가들을 꾸준히 순방했습니다. 그의 적극적인 행보는 결실을 맺어 1977년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리셉션에 영연방 35개국 정상들이 참석했습니다. 요컨대, 영연방은 빠르게 쇠퇴하는 영국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56년 프랑스 총리 귀 몰과 영국 총리 앤서니 에덴이 프랑스와 영국의 합병 가능성을 검토한 국가 문서는 2007년 기밀에서 해제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엘리자베스 2세를 프랑스 국가 원수로 지명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고 이듬해 1957년 프랑스는 로마 조약에 서명하고 유럽 경제 공동체에 가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