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영화에서 외계 생명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면 대개 시각적인 충격이 앞섭니다. 도시 상공을 뒤덮는 거대한 비행선,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CG, 혹은 기괴한 외계인의 외형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용산의 한 극장에서 처음 마주했던 날, 저를 가장 압도했던 것은 거대한 우주선 '쉘'의 모습이 아니라, 극장 바닥을 타고 올라와 제 심장 박동까지 교란시키던 '기이한 소리'였습니다.
주인공 루이스가 처음으로 쉘에 다가갈 때 들려오던, 마치 고대 괴수의 숨소리 같기도 하고 심해의 수압을 소리로 바꾼 것 같기도 한 그 낮고 육중한 진동음. 그것은 단순한 공포나 긴장감을 조성하는 배경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전체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거대한 외계 언어'의 첫 단어였죠.
이 전대미문의 청각적 경험을 직조해 낸 사람이 바로 천재적인 음악가 故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입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후 몇 주 동안 출퇴근길에 이 앨범만 반복해서 들으며, 저는 이 OST가 음악의 형태를 빌린 '또 다른 외계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성대를 해체하여 빚어낸 미지의 존재
영화 속 외계인 '헵타포드'는 먹물을 뿜어내듯 원형 문자(Logogram)를 그리며 소통합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그들의 언어처럼, 그들의 사고방식 역시 인류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죠. 그렇다면 요한 요한슨은 이토록 이질적인 존재의 테마곡을 만들기 위해 어떤 악기를 선택했을까요? 신시사이저? 기계적인 전자음?
놀랍게도 그가 선택한 것은 가장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악기, 바로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OST 트랙 중 'Heptapod B'를 들어보면 이 천재적인 발상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어터 오브 보이스라는 현대 성악 앙상블의 아방가르드한 발성을 녹음한 뒤, 요한슨은 테이프 루프를 이용해 이 목소리들을 무참히 자르고, 늘리고, 겹겹이 쌓아 올립니다.
눈을 감고 이 기괴한 보컬 층을 듣고 있으면, 인간의 성대에서 나온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형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질감이 듭니다. 마치 외계인이 인간의 발성 기관을 처음 빌려 서툴게 웅얼거리는 듯한, 혹은 헵타포드의 먹물 문자가 공기 중으로 번져나가며 공간을 진동시키는 듯한 공감각적인 착각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언어학자 루이스가 투명한 벽 너머의 외계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의미를 찾으려 애쓰듯, 저 역시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해체된 목소리의 파편들 속에서 무언가 뜻을 찾아보려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시간의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미니멀리즘의 마법
'컨택트'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철학은 '사피어-워프 가설'에서 비롯된 시간관의 붕괴입니다. 외계의 언어를 완벽히 체화하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선형적 시간이 무너지고 모든 순간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는 개념이죠. 요한 요한슨은 자신의 주특기인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통해 이 철학적인 개념을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해 냅니다.
보통 영화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낍니다. 서론이 있고, 멜로디가 고조되며 클라이맥스를 터뜨린 후, 잦아들며 끝을 맺으니까요. 하지만 'First Encounter'나 'Kangaru' 같은 트랙에는 우리가 아는 그런 친절한 기승전결이 없습니다. 밑바닥에 낮게 깔리는 드론 사운드, 그리고 그 위를 무심하게 맴도는 일정한 리듬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밤늦은 시간 불을 끄고 이 곡들에 온전히 집중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곡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지금이 곡의 중간인지 끝을 향해 가고 있는지 그 감각이 완전히 흐릿해지는 기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물리적인 먹먹함. 요한슨은 멜로디의 선형적인 발전이라는 전통적 음악의 문법을 과감히 폐기함으로써, 루이스가 겪게 되는 '비선형적 시간의 동시성'을 관객의 고막에 직접 주사해 버린 것입니다.
요한 요한슨의 서늘한 우주, 그리고 막스 리히터의 따뜻한 체온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얽힌,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이면서도 씁쓸한 일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며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바이올린 선율, 'On the Nature of Daylight'는 요한 요한슨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막스 리히터의 기존 발표곡을 차용한 것이었습니다. 이 곡이 영화 전체의 감정선을 쥐고 흔드는 바람에, 요한 요한슨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서 아예 제외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두 이질적인 음악가의 대비야말로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든 숨은 공신이었습니다. 요한 요한슨의 음악이 감정이 철저히 거세된, 한없이 차갑고 거대한 '외계의 지성과 무한한 시간'을 상징했다면, 막스 리히터의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현악 소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상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상징합니다.
시종일관 서늘하고 기하학적인 요한슨의 우주를 통과해 온 끝에, 마침내 막스 리히터의 따뜻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질 때의 그 안도감과 슬픔의 교차. 루이스가 앞으로 다가올 참척의 슬픔을 온전히 알면서도 기꺼이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삶을 끌어안는 그 위대한 선택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소리의 충돌이 있었기에 비로소 완벽한 설득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슨의 밑그림이 없었다면 리히터의 음악은 흔한 신파로 전락했을 것이고, 리히터의 온기가 없었다면 영화는 한 편의 차가운 물리학 논문으로 끝났을 테니까요.
2018년, 요한 요한슨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을 때 '컨택트'의 사운드트랙을 다시 꺼내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이 앨범은, 영화 음악이 단순히 영상의 분위기를 띄우는 조미료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영화의 철학과 주제를 대변하는 '독립적인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출퇴근길의 번잡한 소음 속에서도 좋고, 온 집안이 고요한 새벽녘이라도 좋습니다. 이 앨범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따라 들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뚜렷한 멜로디가 없어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지라도, 어느새 소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간감에 압도되어 우리가 얽매여 있는 얄팍한 시간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듯한, 서늘하면서도 경이로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