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3 셔터 아일랜드의 음악은 어떻게 주인공의 뇌를 잠식하는가: 펜데레츠키와 리게티를 중심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저를 압도한 것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을 짓누르는 '소리'였습니다. 안개 낀 바다를 해치고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위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파사칼리아'가 울려 퍼질 때, 저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시작되는구나'라는 차원을 넘어 숨이 턱 막히는 물리적인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흔히 스릴러나 공포 영화는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날카로운 현악기나 묵직한 타악기를 활용한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합니다. 하지만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를 위해 새로운 곡을 만드는 대신, 20세기 중반의 전위적인 현대 고전 음악들을 날 것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 선택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나면 더욱 소름 돋는,.. 2026. 4. 20.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이 묻는 것: 소음의 시대, 우리는 침묵할 수 있는가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소음의 늪입니다. 우리는 출퇴근길의 백색소음을 지우기 위해, 혹은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끊임없이 소리를 쏟아붓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음악을 일상의 빈 공간을 채우고 불안을 덮어두는 용도로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타타르계 러시아의 현대 음악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의 음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가 경험한 것은 소리의 채워짐이 아니라 '비워짐'이었습니다. 과거 옛 소련 체제의 엄격한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은 종교적, 영적 세계를 구축했던 그녀의 음악은,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소음에 중독되어 있는지, 그리고 완벽한 침묵 앞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는지를 아주 날카롭게 폭로합니다.소리가 멈춘 자리에 남는.. 2026. 4. 18. 억지스러운 '퓨전'을 거부하다: 다케미츠 도루의 <노벰버 스텝스>가 들려주는 이질감의 철학 967년, 뉴욕 필하모닉의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로 초연된 곡. 다케미츠 도루의 는 서양 클래식 음악의 심장부에서 일본의 전통 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우리는 '융합'과 '크로스오버'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타이틀을 단 음악이나 예술 작품들을 접할 때면, 우리는 은연중에 그 둘이 모난 곳 없이 매끄럽게 섞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제가 느낀 것은 아름다운 조화가 아니라 낯설고도 서늘한 '충돌'이었습니다. 서양의 거대한 교향악단과 일본의 전통 악기인 비파, 샤쿠하치의 만남. 뻔한 백과사전이나 음악사 책에서는 이를 두고 '동서양 음악의 훌륭한 접목'.. 2026. 4. 17. 전쟁은 어떻게 멜로디를 파괴했나: 쉰들러 리스트와 아방가르드 음악이 주는 기괴한 위로 거의 30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극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흑백 영화 를 보고 난 뒤,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참혹한 홀로코스트의 영상 위로 흐르던 존 윌리엄스의 바이올린 테마곡은 너무나도 구슬프고 아름다웠기에, 오히려 그 비극성이 뼛속까지 시리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현대 음악,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쏟아져 나온 '아방가르드(전위) 음악'들을 찾아 들으면서 문득 묘한 인지 부조화를 겪었습니다. 정작 그 끔찍한 전쟁의 한복판을 관통했던 당대의 젊은 작곡가들은 의 OST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멜로디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철저히 파괴해 버렸습니다.소음이 되어버.. 2026. 4. 16. 음렬주의의 이해와 역사적 배경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처럼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가 있는 반면, 불협화음으로 가득하여 다소 난해하게 들리는 현대 음악을 접하게 됩니다. 20세기 초,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조성'이라는 음악의 절대적인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 혁명적인 작곡 기법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음렬주의'입니다. 이 글에서는 아널드 쇤베르크가 창시한 12음 기법에서 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음표, 셈여림까지 통제하는 '총렬주의'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과 음렬주의가 현대 음악사에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서양 음악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입니다. 음렬주의란 무엇인가?음렬주의, 또는 시리얼리즘은 단순히 음표를 자유롭게.. 2026. 4. 15. 20세기 독재 정권과 음악 검열: 억압에 맞선 예술과 저항의 역사 20세기 전 세계를 휩쓸었던 독재 정권들은 왜 대중의 음악을 검열했을까요? 나치 독일의 '퇴폐 음악'부터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한국의 1970년대 금지곡 사태까지, 권력이 음악을 통제하려 했던 역사적 배경과 그 한계를 분석합니다. 20세기 인류 역사는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과 독재 정권의 출현이라는 어두운 이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파시즘, 공산주의, 그리고 군부 독재 등 형태는 달랐지만, 20세기의 수많은 철권통치자들은 공통적인 억압 기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대중문화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검열'입니다. 그중에서도 음악 검열은 독재 정권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탄압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절대 권력을 쥔 독재자들은 왜 눈에 보이지도.. 2026. 4. 14. 이전 1 2 3 4 ··· 6 다음